Art story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JWonder 2009. 12. 27. 18:22


제목 :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일시 : 2009. 12. 25(금) 
장소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With 다니

크리스마스 날 무엇을 할 것인가?
일주일 내내 나를 괴롭히던 질문이었다.

오랜기간 작동하지 않았던 머리의 연애 부분을 기름칠을 해가며 돌릴 결과 꼭 가보고 싶었던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전시회를 가기로 결정했다.

비록 어린 여자친구가 이런 전시회를 좋아할지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좋아할 것이라고 내 자신을 세뇌시켰다.

오후 한 시경 만나서 서초역에 도착했으나 날씨는 어둡고, 바람이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제외한 많은 커플들이 추위에서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술관에 도착하니 꽤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답게 연인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소장 중인 작품들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회는 유럽 근대 미술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이름부터가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아닌가. 즉 모네에서부터 피카소까지의 작품을 둘러보면 인상주의에서 미국 미술까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대가들을 대표하는 대표작은 아니지만 충분히 감동적이고 알찬 구성이라는 칭찬이 자자하다.

전시회는 4 파트로 구성이 되어있는데 첫 파트는 '사실주의와 현대적 삶의 풍경'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설명>
19세기 중반 귀스타브 쿠르베가 이끄는 소수의 화가들은 프랑스 아카데미가 원하는 역사 중심의 전통적 주제에서 벗어나 노동자와 농촌의 삶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사실주의자로 명명된 이들은 이상화된 대상보다는 자연주의를 선호했다. 이들이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카미유 코로는 스케치와 완성된 그림을 구별하기 어렵게 하는, 거칠고 분명한 붓질로 평범한 장면으로부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쿠르베와 코로처럼, 외젠 루이 부댕 또한 야외에서 자연을 직접 묘사했다.

노르망디 해변을 묘사한 부댕의 그림들은 대기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한 결과가 낳은 걸작이다. 에두아르 마네는 도시적 삶의 풍경과 유명 인사, 사회적 사건들을 과감히 화폭에 담았는데, 이 때문에 사실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네는 대담한 필치와 밝은 색채를 즐겨 사용한 점에서 인상주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전시 작가는 쟝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 귀스타브 쿠르베, 외젠 루이 부댕, 에두아르 마네 등이다.

                                                               귀스타브 쿠르베 - 시옹의 성


                                                            외젠 루이 부댕 - 에트르타 해변

미술사에 큰 지식이 없기에 어떤 화가인지는 잘 몰랐으나 하나 같이 명작임은 분명해 보였다. 특히 쿠르베는 사실주의라는 것을 탄생 시킨 화가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더욱 대단해 보였다.

일에 크리스마스라서 그런지 그림을 보기 위해 줄을 서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아이들은 전시회를 완주(?)하는 것이
힘에 부치는 듯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와 떼 쓰는 소리가 들렸고, 안내원들은 피곤한 지 무심한 듯 자리만 지켰다.

두 번째 파트는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였다.
<설명>
74년에서 1886년 사이에 열린 여덟 차례의 인상주의전(展)에서 진보적인 화가들은 세계를 표현하는 혁명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붓과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해 빠른 속도로 대상을 묘사했다. 다양한 기후 변화 속에서 하루 중에도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을 직감(直感)을 통해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메리 카사트, 에드가 드가,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부러 북적이는 도시, 활기 넘치는 항구, 발레를 연습하는 댄서 등 도시와 산업에 초점을 맞춘 도전적인 주제들을 선택했다.
1886년 마지막으로 열린 인상주의전 이후 폴 세잔과 폴 고갱, 반 고흐 같은 화가들은 자연주의를 버리고 추상적 구성과 상징적 내용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후기 인상주의로 불린 이들은 보다 이국적이고 표현이 풍부한 주제들을 찾아 나섰으며, 새로운 색채 사용법을 추구했다. 이런 실험은 오귀스트 로댕, 앙리 루소, 호아킨 소로야 이 바스티다 등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 아티스트들의 관심을 끌었고, 나아가 세계적으로 비슷한 미술운동을 유행시켰다.
전시 작가로는 일레르 제르맹 에드가 드가, 메리 스티븐슨 카사트, 카미유 피사로, 알프레드 시슬레,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폴 세잔, 오귀스트 로댕, 호아킨 소로야 이 바스티다, 앙리 줄리앙 펠릭스 루소 등 거장들이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 르그랑 양의 초상


                                                               에드가 드가 - 발레수업


                                          메리 스티븐슨 카사트 - 관람석의 진주 목걸이 여인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화가 중 한 명인 르누와르의 그림이 나왔다. <르그랑 양의 초상> 이외에도 <기타치는 여인>, <그랑 블리바르>, <일린 샤리고의 초상>등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또 모네와 고갱의 작품들도 감동을 전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클로드 모네 - 석양에 물든 바다 풍경


                                                              폴 고갱 - 신성한 산


                                                빈센트 반 고흐 - 데이지꽃이 있는 정물

세 번째는 '피카소와 아방가르드'
<설명>
1907년과 1912년 사이 파리에서는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새로운 표현 언어를 창조했다. 과거와 같이 그림에서 3차원 깊이의 환영(幻影)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화면(畵面)의 평면성에 입각해 공간과 질량, 입체를 표현하는 새로운 회화 방식이었다. 이들의 입체주의는 당시 미술가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특히 자크 비용과 그의 형제 레이몽 뒤샹 비용의 집에 정기적으로 모이던 퓌토 Puteaux 그룹의 입체주의자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로베르 들로네, 페르낭 레제, 프란시스 피카비아도 속했던 이 그룹의 미술가들은 모두 피카소와 브라크의 혁신을 지지했다.

다만 이들의 작품은 피카소나 브라크의 작품보다  밝은 색채를 사용했으며, 이해하기도 쉬운 편이었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파리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예술가들로 창작의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마르크 샤갈, 후안 그리스, 자크 립시츠, 호안 미로,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도 그 일원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들을 ‘파리파 the School of Paris’라고 불렀다. 이들은 저마다 고유의 미술 전통과 이미지에 따라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을 발전시켰으며, 그 결과 파리는 더욱 더 활기차고 다양한 예술의 도시로 번성해 나갔다.
전시 작가는 파블로 피카소를 비롯해 마르셀 뒤샹, 앙드레 드랭, 앙리 마티스, 피에르 보나르, 아리스티드 마이욜, 마리 로랑생,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마르크 샤갈 등이다.

인류 미술사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피카소의 작품을 볼 수 있어, 매우 기대되었다. 비록 많이 난해하고 무엇을 뜻하는 지 확실하지 않았으나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 이번에는 아방가르드까지 대표적 작품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파블로 피카소 - 여인과 아이들


                                                            마르크 샤갈 - 한밤 중

샤갈. 뮤지컬을 통해 알게 된 화가라 관심이 많았었는데 이렇게 작품을 보게되어 무척이나 반가웠다.
주로 현실과 이상을 하나로 합치면서 상상을 통해 그려낸 작품들이 많이 보였다.

마지막으로는 '미국 현대 미술'이었다.
<설명>
1923년 미국미술가협회는 유럽과 미국의 현대미술을 나란히 전시한 행사를 기획했다. 모더니즘이 마침내 미국에도 상륙했음을 알리는 선언적인 전시였다. 뉴욕에서 열린 이 전시는 보통 아모리 쇼 Armory Show라 불렸는데, 미국 미술가들에게 미국 고유의 미술언어를 개발하도록 자극을 준 이정표가 된 사건이었다. 특히 마스든 하틀리, 존 마린, 존 슬론(이 세 화가는 모두 아모리 쇼에 출품했다.)은 이 전시를 계기로 ‘애쉬캔 Ashcan 사실주의’ 로부터 추상과 초현실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스타일을 이용해 미국적인 주제들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미국 고유의 풍경과 야생의 삶은 찰스 더무스, 모리스 콜 그레이브스, 조지아 오키프, 앤드류 와이어스 등 여러 화가들의 그림에 영감을 불어 넣었으며, 현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그곳의 삶의 풍경은 밀튼 애버리, 알렉산더 콜더, 로이 리히텐슈타인, 벤 샨 등의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

전시 작가는 존 마린, 마스든 하틀리, 조지아 오키프, 밀턴 에버리, 알렉산더 콜더,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이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 금붕어가 있는 정물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다. 둘이서 저게 무엇일지 잠깐 생각해 보다 제목을 보고서야 금붕어 인 것을 알았다. 난 고구마라고 생각했는데... 미국 미술은 TV나 잡지 등에서 종종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친님이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파 마지막은 제대로 둘러보지 못하고 나왔다. 사람도 많고 불편해서 관람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유익하고 속이 꽉찬 전시회라고 많이들 칭찬을 한다.
보러오길 잘한 것 같다.

많이 봐야 많이 느낀다.
많이 들어야 많이 느낀다.
많이 해봐야 많이 느낀다.


2010년은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