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story

함께하는 고독은 행복을 만든다. <바람이 분다>

JWonder 2009. 12. 30. 16:20


제목 : 바람이분다
저자 : 호리 다쓰오
번역 : 토요일본문학회
출판사 : 석영
초판 1쇄 발행 : 2007. 12. 5
174P
* 2009, 12, 29(화) 정독도서관 대출
* 2009. 12. 30(수) 완독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오오 나의 침묵....내 영혼의 건축물
나는 여기 내 미래의 연기를 마신다.
아름다운 하늘, 참된 하늘이여
변하는 나를 보라



폴 발레리Paul Valery <해변의 묘지 中>

 

이 책의 모티브를 제공해 준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시이다. 가만히 책을 들여다보니 작가는 1904년에 태어나고 전쟁 중이던 30~4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라고 소개되어있다. 작가인 호리 다쓰오는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예술파 문학을 두루 섭렵하면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고 한다.

                                                                     <호리 다쓰오>

한국에서는 처음 번역되었다고 하는데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바람이 인다' 라고 소개되었다. 또 올 3월에는 <바람 불다>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토요일본문학회'라는 모임에서 직접 번역했는데 이 모임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학생들이라기에 젊은 나이에 대단하다 싶었는데 방통대를 다니던 지천명을 넘긴 주부들이 만들었다고 하니 더욱 놀랍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천명이면 50을 넘긴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데, 역시 배움의 길에는 나이란 장애물은 능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느꼈다.

<바람이 분다>는 두 개의 짧은 소설로 이루어진 책이다. '바람이 분다'와 호리 다쓰오란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인 '성가족'이 하나의 묶음으로 이루어졌다. '바람이 분다'는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실제로 작가와 약혼녀는 폐결핵을 앓아 요양소에 들어갔고, 약혼녀는 죽고말았다. 호리 다쓰오는 극 중 세쓰코란 인물과의 만남과 요양소 생활, 세쓰코의 죽음 후의 생활들을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나 갑자기 살고 싶어졌어요"

세쓰코가 주인공을 만나면서 조용히 얘기한다. 서곡 - 봄 - 바람이 분다 - 겨울 -  죽음의 그림자가 서린 골짜기 라는 제목으로 나뉜 각 장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해가는 둘의 사랑을 담백하고 감동적이게 그려내고 있다.  요양원으로 떠난 두 사람은 그 생활에서 함께있다는 것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껴간다. '죽음을 앞둔 사람만이 진정 자연을 아름답게 느낀다'는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의 눈과 심장을 공유하며  고독마저도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여름은 세쓰코의 건강 악화와 함께 금방 지나가고 겨울이 찾아왔다. 세쓰코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지만 그 둘의 사랑 또한 더욱 깊어진다. 하지만 주인공은 글쓰기를 시작하고, 자신들의 현재와는 다른 이야기 속 연인의 행복을 보면서 불안해한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녀의 말을 통해 자신이 억지로 이 곳에 끌고 온 것은 아닐까 하는 공포감에 휩싸인다.

마지막 장인 '죽음의그림자가 서린 골짜기'에서는 남자가 남긴 일기 형식으로 진행되어 둘의 행복했던 고독은 혼자만의 고독이 되어 돌아온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적막감을 느끼지만 결국 지난 날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라 느끼면서 행복의 골짜기라는 말을 되뇌이게 된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둘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사랑이야기를 꾸밈없이 풀어낸다. 과거의 사랑에 집착하고 미래의 사랑에 불안하는 것은 현재의 사랑에 나쁜 영향만을 끼칠 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소설 중 한 구절이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행복한 추억만큼 행복을 방해하는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