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story

혼혈인으로써 본 프랑스의 인종문제.<멋진배역>

JWonder 2010. 1. 5. 11:22


제목 : 멋진배역
저자 : 니콜라 파르그
번역 : 문소영
출판사 : 뮤진트리
초판 1쇄 발행 : 2009. 9. 28
272P
2009. 12. 29(화) 정독도서관 대출
2010 1. 5(화) 완독

때론 책이나 작가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없이 책을 골라 보는 것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도전이다. 과연 책이 나에게 맞을지, 정말 읽을만 한지 기대하면서 읽는 즐거움또한 작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도전은 만족할만한 성공을 거뒀다. 뭐 소설이라는 장르는 대개 그 도전이 성공하곤 하지만.

책을 펼쳐 처음 몇 장을 읽는 순간 '아 이 소설은 읽을만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학창 시절을함께 보냈던, 하지만 그다지 친하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았던 친구에게서 온 한 통의 편지로 시작된 이야기는 섬세한 주인공의 속내를 자세히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느슨하지 않게 끌고간다.

사실 거의 100페이지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이 혼혈인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야기의 핵심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변명을 하자면 이 책의 표지, 저 위에도 보이는 표지에 나오는 커다란 인물 때문이다. 당연히 주인공을 저렇게 그려놓은 줄 만 알았는데.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보니 역시 주인공은 프랑스인인 어머니와 콩코르딘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었던 것이다.

<니콜라 파르그>

저자인 니콜라 파르그는 프랑스의 젊은 유망작가로 어린 시절을 카메룬에서 보내고 자이르란 나라(찾아보니 아프리카 중부 내륙에 있는 나라란다.)의 여인을 부인으로 두고 슬하에 두 자녀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의 경험담이 글에 묻어나서인지 혼혈인이 겪는 감정의 변화를 굉장히 디테일하고 명료하게, 한 마디로 말하자면 '혼혈인'스럽게 잘 풀어놓았다.

부패한 정치가인 아버지가 프랑스(백인)어머니 사이에서 낳은 주인공 앙투안. 그는 프랑스에서 자라나고 프랑스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인으로서 최근 개봉한 영화로 어느정도 이름을 알린 배우다. 그는 자신의 배다른 형제 등 흑인 가족들이 있지만 그들은 그를 백인의 나라에서 백인으로 여기고 대한다. 또한 프랑스에서 백인들은 그에게 의식적으로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은연중에 그를 흑인으로 여기고 있다.

백인의 나라에서 살면서 또 백인의 피를 반이나 가지고 태어났으면서 결코 백인으로 여겨질 수 없고, 백인의 사회에 들어갈 수 없을 뿐 만 아니라 흑인들의 사회에서도 철저히 외면당하는 앙투안의 모습은 현재 프랑스가 안고있는 심각한 인종문제를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앙투안은 모든 이들이 선망하고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는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또 자신도 어느 정도의 유명세에 취해 겸손한 배우인 양 동창이 선생으로 있는 고등학교에 가 영화 수업에 참관하는 등의 자선(?)을 베풀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무기 삼아 여러 여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 <화이트 스터프>는 이미 끝났고 다시금 자신은 별 볼일 없는 배우로 돌아갈 것을 직시하고 좌절한다.

사실 극 중에 나오는 유명 여배우인 '알리에노르 샹플랭'이랑 썸씽이 일어날 줄 알았다. 음 하지만 결국 위대한 여배우와 자신과의 차이만을 깨닫고 끝나버린다.

앙투안이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흑인과 백인에 대한 관점, 서로를 대한 태도, 흑인에 대한 배려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백인들을 보여주면서 작가는 프랑스 내에 있는 인종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나선다. 차가운 무관심만이 있는 백인 사회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흑인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사실 인종 문제는 아직 별 실감이 가지 않는다. 단일 민족인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하는건가. 뭐 옮긴이의 글에서도 나타나듯 다문화가정이 증가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간이라는 것은 막상 닥치기 전까지는 그 심각성을 모르기 마련이다. 그래도 베르나르 베르베르 말고 오랜만에 보는 프랑스 소설에서 유쾌하면서도 일상적인 프랑스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책을 다 읽고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