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story

[Movie story] 한국판 왕자와 거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JWonder 2012. 9. 21. 13:30

 ※아래 내용에 영화 내용이 언급됩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신 분은 스킵해주세요:)

제목 : 광해, 왕이 된 남자
감독 : 추창민
주연 : 이병헌(광해/하선 役), 류승룡(허균 役), 한효주(중전 役)
일시 : 2012. 9. 19(수)
장소 : 군자CGV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또 한 명의 광해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당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광해군 8년.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점 난폭해져 가던 왕 ‘광해’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위협에 노출될 대역을 찾을 것을 지시한다. 이에 허균은 기방의 취객들 사이에 걸쭉한 만담으로 인기를 끌던 하선을 발견한다. 왕과 똑같은 외모는 물론 타고난 재주와 말솜씨로 왕의 흉내도 완벽하게 내는 하선. 영문도 모른 채 궁에 끌려간 하선은 광해군이 자리를 비운 하룻밤 가슴 조이며 왕의 대역을 하게 된다.

왕이 되어선 안 되는 남자, 조선의 왕이 되다!

그러던 어느 날 광해군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고, 허균은 광해군이 치료를 받는 동안 하선에게 광해군을 대신하여 왕의 대역을 할 것을 명한다. 저잣거리의 한낱 만담꾼에서 하루아침에 조선의 왕이 되어버린 천민 하선. 허균의 지시 하에 말투부터 걸음걸이, 국정을 다스리는 법까지, 함부로 입을 놀려서도 들켜서도 안 되는 위험천만한 왕노릇을 시작한다. 하지만 예민하고 난폭했던 광해와는 달리 따뜻함과 인간미가 느껴지는 달라진 왕의 모습에 궁정이 조금씩 술렁이고, 점점 왕의 대역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하선의 모습에 허균도 당황하기 시작하는데...

왕자와 거지, 임금과 광대로 태어나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줄거리만 보더라도 왕자와 거지, 혹은 일본의 카케무샤를 떠올리게 한다. 똑같은 모습을 한 대역이 얼떨결에 왕위에 오르고, 점차 그 대역은 왕의 권력에 재미를 붙이면서 드러나는 성격과 상식을 파괴하는 일처리까지. 사람들은 누구나 <광해>의 줄거리만 대충 들어도 이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관람객들은 왕의 대역이 상식을 파괴하고 권위보다 사람을 위하는 모습에서 희열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록에 실려있는 짧은 문장으로 영화 <광해>는 태어났다. 참 상상력이 풍부하다. 조선 시대의 역사를 모두가 아는 이야기에 잘 녹여냄으로써 역사를 몰라도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역사를 아는 사람에게는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병헌이라는 걸출한 배우로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왕과 광대의 역할에 120% 몰입하면서 같은 사람을 보고 있으면서도 다른 인물을 느꼈다.

경이로운 이병헌, 날카로운 류승룡, 아쉬운 한효주

경이롭다. 이병헌은. 인간적인 면은 자세히 모르니 이러쿵 저러쿵 할 처지가 되지 못하나 배우로서의 이병헌은 정말 하나의 국보같다. TV드라마나 영화, 멜로나 액션을 가리지 않는 연기력은 이제 그의 외모보다 더 빛나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사실 두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어찌 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광해 역을 맡았던 이병헌 자리에 누굴 넣으면 만족할 만 할까? 유지태? 김명민? 송강호? 설경구? 모두 연기력의 진수를 뽐내는 배우들이지만 광해의 위엄과 간악함, 하선의 무지함과 가벼움, 백성을 향한 뜨거운 감정까지 동시에 소화하기엔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병헌만이 간악하면서 약간 푼수같은 역할을 하기 제격인 듯 싶다.

류승룡 또한 허균이라는 역을 잘 소화해 내었다. 눈빛은 늘 날카로우나 은근히 개그스러운 캐릭터. 하선의 격의없는 행동에 점차 마음이 끌려 그를 왕으로까지 추대하고픈 감정을 드러내주었다.

다만 한효주는 이름값에 비해 너무 비중이 없어 보였다. 보고 나오면서 '왜 중전 역에 한효주를 썼어야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병헌과 같은 소속사라 같이 나온 것이 아닐까. 한효주는 <동이>때의 이미지를 그대로 들고 나왔으며, 그냥 누가 했어도 무난했을 정도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무겁지 않아서 더 좋은 사극 영화

사극은 대체로 무겁다고 느낀다. 칼부림이 일어나거나 이룰 수 없는 사랑이 일어나는 이야기들. 하지만 <광해>는 무겁지 않다. 스토리 중간중간에 잘 스며든 개그적인 요소가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준다. 누구나가 꿈꾸는 왕의 모습을 담고 있기에 보는 내내 설레고 마치 내 일처럼 즐겁다. 이 영화의 성공은 기존의 사극처럼 엄중하고 무거운 주제가 아니기에 오히려 가능한 것 같다.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흘러가지만 적절한 흥미요소들로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영화. 이런 영화도 좋다.

사실 <광해>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고, 이병헌이 전력을 다해서 연기를 하지는 않았을 거란 나의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고 배우들의 연기만 봐도 영화 티켓값은 아깝지 않을 영화다.

 

 

 

 

 

★★★☆